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닥토 전투 (문단 편집) == 875 고지 전투 == >“우리 사령부의 전략은 미군을 유인하여 중부고원 지방에서 섬멸해 버리는 거였습니다.” >---- > 참전용사 응우옌 탄 손의 증언 Hill 875 윌리엄 웨스트 모얼랜드가 닥토에 병력을 보내는 것은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이 원하던 것이었다. 북베트남군 제174연대는 미군을 기다리고 있었고,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미군이 닥토 근처에 있는 ‘875고지’를 차지하러 올 거란 걸 알고 있었다.1967년 11월 19일 일요일 아침 알파, 찰리, 델타 중대는 875고지를 차지하라는 명령을 받고, 출동했다. 그들이 도착하기 이전 중 포대와 F-100 전투기가 먼저 875 고지에 폭격을 퍼부었다. 폭격이 끝난 뒤, 알파, 찰리 델타 중대는 산 비탈길을 올랐고, 아침 퍼부은 포격으로 쓰러진 나무들이 놓여있는 빈터로 들어섰다. 이는 산 정상에서 270m 남짓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. 북베트남군과 베트콩들은 참호에서 미군들이 5m 정도 떨어진 거리까지 왔을 때 미군들의 얼굴을 보았고, AK-47을 든 베트콩들은 미군을 향해 사격을 퍼부었다. [[파일:CAR6711-Vietnam137.jpg]] 베트콩의 공격을 받자 미군들은 아침 당시 폭격으로 쓰러진 나무 뒤로 엄폐할 곳을 찾아다녔다. 그 공격으로 찰리와 델타 중대는 뿔뿔이 흩어졌다. 그러는 사이에 다른 북베트남 군대가 뒤에서 알파 중대를 기습했다.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으로부터 공격받은 세 개 중대는 사실상 거의 전멸 상태에 놓였다. 전투에 참여한 중대장들을 비롯하여 장교와 사관 대부분이 사망했다. 세 개 중대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공터에 모여 최선을 다해 방어 원을 만들어 방어에 나섰다. 이에 미 공군은 폭탄과 네이팜 폭탄을 퍼부으며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진지를 폭격했고, 이 과정에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뿐만 아니라 수십명의 미군도 사망했다. 이틀 뒤 헬기를 통해 현장에 도착한 멧 해리슨이라는 병사는 다음과 같은 증언을 남겼다. >“그곳은 아수라장이었습니다. 살아 있는 병사들은 나무 뒤에 땅을 파고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, 이들은 이틀 동안 무더위 속에서 물 없이 견뎌야 했습니다. 거의 모든 병사가 상처를 입었죠. 그리고 주변엔 여기저기 총탄에 맞거나 폭탄에 맞아 사망한 병사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습니다. 말 그대로 지옥 같았죠.” >---- > PBS 베트남 전쟁 다큐 5화에 나온 멧 해리슨의 인터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